청렴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글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청렴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선생님의 글을 정독하며 정도(正道)는 있지만 정답(正答)은 없는 청렴의 정의를 깨닫고 제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청렴이 필요한, 혹은 청렴한 삶을 추구하시는 분들께 그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해마다 여러 공공기관 및 정부 부처에서는 반부패, 청렴과 관련된 교육 및 연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직자와 청렴이라는 단어는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별개의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공통의 단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직사회에서 유독 청렴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개인적 의미의 청렴’과 ‘사회적 의미의 청렴’을 구분하여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의미의 청렴’이 검소한 삶, 재물을 탐내지 않는 마음, 이기적이지 않은 행동 등 ‘깨끗한 삶’이라는 인격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면,
‘사회적 의미의 청렴’은 보다 확장된 의미로써 단체・국가를 위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부리지 않는 마음가짐, 내 이기심으로 인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 작은 부패가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행동 등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라는 유교적인 의미가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사회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의미의 청렴을 강조하여 집단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청렴의 실천이 곧 집단의 발전 및 안정에 기여한다는 믿음으로 청렴과 관련된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 의미의 청렴 실천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의미의 청렴을 달성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청렴을 개인적 의미의 청렴과 사회적 의미의 청렴으로 구분 지었으나, 사회적 의미의 청렴을 실현하기 위해선 개인적 의미의 청렴 실천이 선결조건(先決條件)으로 작용합니다.
개인적 의미의 청렴을 달성하지 못하면 ‘나 하나쯤이야’로 대표되는 개인의 이기심이 발생하게 되며, 이는 곧 사회적 의미의 청렴 실천에 큰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작은 불씨가 큰 화마(火魔)로 이어지듯이, 개인의 작은 심성의 결정이 단체, 기업, 국가 등 사회 전체의 중대한 결함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하며, 개인적 의미의 청렴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개인적 의미의 청렴을 실천하기 위해선 개인의 인격수양(人格修養)과 더불어 각종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렴에 대한 교육을 보다 개인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인격을 수양하는 방법과 그것이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교육의 확대가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의미의 청렴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청렴에 대한 두 가지 의미와 그 관계, 이를 실천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황희와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청백리(淸白吏)인 고불(古佛) 맹사성의 명언을 마지막으로
청렴에 대한 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소, (人上無人 人下無人.)
내 비록 벼슬이 정승이지만 만백성이 내 벗이 아니겠소.”
다음 글은 평가분석팀 이정민 선생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